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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가난의 고통이 미술 재료로

고된 아르바이트와 육아, 가난, 실연 상처…. 

젊은 예술가들의 미술 재료는 눈물이었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 `신진작가 예감전`에서 만난 최재혁(36) 정운식(35) 구나영(36) 정혜경(41)은 청춘의 방황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네 사람은 `자서전 : 기억수집`을 주제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최재혁 작가는 7년 전 동양화 학원에서 소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기명절지도(도자기와 꽃, 과일 등을 섞어 그린 정물화)를 발견했다.

중국에서 건너왔으며 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1843∼1897)과 이도영(1884~1933)이 발전시킨 그림 형식이다. 최 작가는 기명절지도에 영감을 얻고 책가도 형식을 차용해 골동품을 그리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뭘 그릴지 방황했을 때 터키 여행에서 골동품을 봤고, 기명절지도를 알게 됐다. 골동품은 누군가의 삶을 간직한 소재여서 끌렸다"고 말했다.

정운식 작가는 옛 애인에 대한 추억을 설치 작품으로 풀어냈다. 과거 여자친구와 자주 듣던 비틀스 노래 `아이 윌(I will)`이 생각나 비틀스를 그린 알루미늄을 겹겹이 쌓은 부조 회화 설치 작품 `아이 윌`을 만들었다.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레이더스 1981`을 같이 봐준 그녀가 생각나 영화 주인공 해리슨 포드를 그린 부조 회화 `레이더스 1981`를 제작했다. 정운식 작가는 "사람 얼굴은 하나의 장소다. 추억, 기억, 감정을 모두 보여줄 수 있다. 비틀스나 해리슨 포드를 통해 음악이나 영화를 같이 즐긴 누군가를 회상한다"고 설명했다. 

구나영 작가는 삶의 희로애락을 나무와 숲에 빗대어 서정적인 수묵화를 그린다. 삶의 무게를 검은 먹에 묻어둔다. 검은색 옷을 입은 그는 "그림은 내 마음의 풍경이자 자화상이다. 단단하게 뿌리 내리고 비바람이 닥쳐도 버티고 있는 나무가 나 같다. 무수히 선을 그으면서 나를 토닥거린다"고 했다. 

정혜경 작가는 영수증으로 꽃가마를 만들어 전시장에 매달았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살림 하느라 경력 단절이 불가피했던 작가는 "가게부를 열심히 쓰고 알뜰살뜰하게 살았는데 10여 년이 지나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아 허무했다. 영수증을 태우려고 하다가 아까워서 결혼을 상징하는 꽃가마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30일까지. 

<매일경제>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