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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초록인 이끼계곡…태백은 짜릿했다

최근 강원도 태백에 다녀왔다. 여행기자 9년 차. 국내 웬만한 여행지는 다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태백이 리스트에 없었다.

◆ 비 맞은 보람이 있네…반가운 `수정란풀`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난생처음 야생화 트레킹을 가는데 비가 온단다. 피할 수 없으니 즐겨야겠다. 비가 와도 괜찮다고 정신무장을 했다. 실제로 우중 산행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태백산 야생화 트레킹은 금대봉 코스를 따라 진행된다. 태백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금대봉 코스`를 보면 총 길이 9.4㎞로 나온다. 해발 1268m 두문동재에서 시작해 금대봉에 올라 분주령과 대덕산을 거쳐 검룡소로 하산하는 코스로, 최대로 걸으면 9.4㎞인 거고 분주령만 찍고 곧장 하산하면 7㎞로 줄어든다. 

6월 말~7월 초 봄 야생화가 여름 야생화에게 무대를 내어주는 시점이었다. 처음에 만난 건 태백기린초. 뾰족뾰족한 노란 꽃잎이 곧게 솟은 모양이다. 채 피지 않은 건가 생각했는데, 이게 만개한 모습이란다.

능선에 걸린 비구름이 비를 한껏 내뱉었다. 안 되겠다 싶어 발길을 돌렸다가 비 줄기가 잦아드는 걸 보고 다시 되돌아왔다. 운동화는 일찌감치 젖었고, 우비 안은 습기로 가득했다. 점점 말수가 줄었고, 몸을 때리는 빗소리만 귀에 울렸다. 적막을 깬 건 앞장서서 가고 있던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다. 갑자기 땅바닥에 주저앉더니 "대박"을 외쳤다. 남들은 기를 쓰고 찾아도 못 보는 야생화 `수정란풀`이었다. 

"이거 본 것만으로도 태백에 온 보람이 있는 거예요. 직접 찍은 수정란풀을 채팅 앱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는 야생화 마니아들도 많아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낯설게 생긴 수정란풀을 내려다 봤다. 꽃이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풀도 아닌 것이 난생처음 보는 생명체였다.

◆ 난생처음 만난 이끼계곡…첫술에 배불렀다 

야생화 트레킹을 중도 포기하는 바람에 일정이 꼬였다. 시간도 뜨고 원하는 그림도 얻지 못해 울상이 된 일행에게 이원근 대표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바위도 나무도 온통 초록이끼로 뒤덮인 그곳, 이끼계곡으로 가는 데 이견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만항재와 화방재 두 고개를 넘어 40분이 걸려 찾아간 곳은 상동이끼계곡. 영월 동쪽 끝에 있는 상동읍은 태백과 경계하고 있는 동네다.

분명 도로뿐이었는데, 우거진 숲길에 발을 디디는 순간 마법처럼 물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숲으로 걷다 보면 왼쪽으로 사람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때마다 방향을 틀어 계곡 쪽으로 향하면 된다. 돌과 나무와 물줄기. 흔하디 흔한 풍경에 마법을 더하는 것은 바로 초록 이끼. 

이끼계곡은 꽤 깊었다. 약 500m까지 초록초록한 풍경이 이어진다. 나무, 돌, 물 그리고 여기에 이끼가 더해져 만들어낸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매일경제> 홍지연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