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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아파도…위대한 예술가 키운 모성

영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된 건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실명한 소년에게 엄마는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너는, 모든 걸 남들과 똑같이 할 수 있어." 

시각장애인 아들에게 엄마는 악기 하나를 쥐여 줬다.

카세트테이프에 곡을 녹음했고 점자로 악보를 만들었다. 아들이 미국 대학원에 합격하자 현지에 2주간 머물렀다. "6년간 혼자 살려면 새 길을 익혀야 했으니까요. 강의실, 연습실, 식당의 동선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를 기른 어머니 조묘자 여사(79)의 회고다.

조묘자 여사를 비롯한 대한민국 예술인의 어버이 6인이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이 열린 8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은 눈물 없이 듣기 힘든 사연이 한가득이었다. 배우지 못한 한(恨)을 자식의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어머니, `시(詩)가 밥 먹여 주느냐`며 대노하다가도 아들 책 출간 비용으로 쌀 열 가마니 값을 준 아버지, 딸 교육비를 벌기 위해 남대문시장을 오간 어머니, 매장 한 귀퉁이에 네 딸의 연습실을 만들며 공부시킨 어머니 등의 사연은 위대한 스토리였다. 

발레리나 김세연의 어머니 조명상 여사(79)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딸의 교육비를 벌어야 했다. 무대 위 허공으로 도약하는 딸을 매일 상상하며 남대문시장을 오가며 새벽장사를 했다. `남대문시장 조 여사`의 딸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스위스 취리히 발레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어머니의 헌신에 답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의 어머니 최석순 여사(82)는 매장 한 귀퉁이에 두세 살 터울인 네 딸의 연습실을 만들었다. "오래 전 `장사는 엄마가 할 테니, 이 방은 너희들 연습실이다`라고 하시던 엄마가 생각난다"며 이경선은 회고했다.

시인이 되겠다는 아들을 만류하며 탄식하던 나승복 옹(93)은 아들에게 쌀 열 가마니 값을 결국 첫 시집 출간 비용으로 내줬다. 이후 아들은 지금까지 40권의 시집을 냈고 어느덧 그를 모르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 `풀꽃`의 시인 나태주다.

`성균관 유생`이던 아버지 탓에 원하던 배움에서 멀어졌지만 결국 세 딸에게 국악을 가르쳐 모두 유명 예술인으로 키워낸 국악인 서춘영·서은영·서진희의 어머니 김정순 여사(68), 글자를 전혀 몰랐지만 아들을 `섬진강 시인`으로 키워낸 김용택의 모친 박덕성 여사(91)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용택은 "어머니는 자연이 하는 말을 제게 전해주셨고 내가 그걸 받아 적으니 시가 됐다.

 내가 시를 쓸 수 있던 건, 삶을 시처럼 살았던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회를 맡은 황수경 아나운서가 "활짝 웃어달라"며 전한 주문과 달리 수상자와 가족은 곳곳에서 훌쩍였다. 김용택의 부인 이은영 여사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신다"며 두 뺨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축사를 낭독하면서 몇 차례나 말을 잇지 못했다.

<매일경제> 김유태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