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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 대신 짚불로 지글지글… 불맛에도 유행이 있다
[불맛 열풍]
고기부터 과자까지 불향 인기… 서양식 불맛 넘어 우리 식으로
"아궁이서 구워낸 듯 은은하게 철판에 굽고 숯불로 향 입히고 본연의 맛 가리지 않을 정도만"
으슬으슬 추워질수록 지글지글 굽거나 볶고 싶어지는 걸까. 여기서도 저기서도 '불맛' 얘기다. 캠핑 마니아 김정주씨는 "찬 바람에 붉어진 단풍을 보며 숯과 장작을 지피고 그 위에 고기를 굽는 맛에 캠핑을 간다"고 했다. "그게 늦가을의 맛이잖아요?"
캠퍼들만 불맛을 따지진 않는다. 요즘 인기라는 식당의 상당수는 불맛을 내세운다. 마트에서도 불맛 열풍은 감지된다. 맛살·컵라면·과자에조차 불맛을 입힌 제품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 불맛이란 음식에 불이 맞닿으며 입혀지는 독특한 풍미. 맛보단 냄새에 가까워 불향, 불냄새라고도 불린다.
◇갈수록 뜨겁네, 불맛 열풍
서울 용산 삼각지역 근처에 있는 고깃집 '몽탄'은 평일에도 최소 1시간 넘게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고 소문난 곳. 짚불에 양념갈비나 삼겹살을 초벌구이한 다음, 식탁에 놓인 무쇠 불판에 한 번 더 익혀 먹는 맛이 소문을 탔다. 이곳 대표는 "불맛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숯불이나 가스불에 바로 익히는 직화구이나 팬에 통삼겹을 바삭하게 익히는 방식이 인기였다면, 이젠 향(香)이 관건이라고 봤다는 것. "장작을 벌겋게 달궈 만든 잉걸불에 고기 굽는 것도 해봤고, 쑥을 말려 태운 향을 입히는 것도 해봤는데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그러다가 찾아낸 게 짚불이에요. 서양식 불맛이 아닌 우리 식 불맛이잖아요. 시골 아궁이에서 풍기는 연기 냄새요."
불맛이라고 무조건 강렬해선 인기가 없다. 불향기가 너무 강하면 식재료 본연의 맛을 덮는다고 싫어하는 이도 많아서다.
서울 역삼동 '돝고기 506'의 대표 역시 "불맛에도 균형이 있다"고 했다. 그가 설명하는 불맛은 두 가지로 완성된다. 고기 단백질이 열을 만나 갈색으로 익어가는 '마이야르 반응'과 타는 듯 익는 탄화(炭化) 현상이다. "이 두 가지를 어떤 도구로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쓴맛·고소한 맛 등을 디자인할 수가 있어요. 커피가 쓰면서도 구수하고 달큼해야 맛있는 것과 비슷해요.
◇알수록 끌리는 '여섯 번째 맛'
책 '고기 마스터'를 쓴 시바타 쇼텐은 "불맛은 여섯 번째 맛으로도 불린다"고 했다. 단맛·짠맛·쓴맛·신맛, 감칠맛 다음으로 이젠 불맛이 꼽힌다는 얘기다. 한식·일식이 직화나 연기로 불맛을 낸다면 중식에선 반구형의 웍을 손목 스냅으로 움직여 내는 것을 진짜 불맛이라고들 말한다. '도림'의 여경옥 셰프는 "웍헤이, 즉 웍의 숨결이란 말이 있지만 사실 불맛이란 말은 한국에서 더 많이 쓴다"며 "뜨거운 기름과 향신료와 간장이 센 불에서 합쳐지는 것이 불맛이다. 알수록 복잡하고 다채로운 맛"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송혜진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