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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연기할 때 힘든 점? 어중간한 배려죠"

청각장애인 배우 김리후씨… 手語 소개 유튜브 채널도 운영
"장애인도 수퍼 히어로나 악당 역할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것"

"언젠가는 수퍼 히어로, 또는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는 악당 연기를 하고 싶어요. 장애인이라고 못할 이유가 있나요?"

경기 부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리후(29)씨가 삼각대에 올린 카메라 앞에 앉아 수어(手語)로 유튜브 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는 선천적 청각장애인이다. 장애등급제 폐지 전 등급으로 2급에 해당하는 중증 장애다. 그래도 정확한 발음과 큰 소리로 말을 하면 알아들을 수 있고, 발음은 어눌하지만 말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다고 한다.

국내 최초의 청각장애인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김씨는 "최초라는 단어는 미디어에서 좋아하는 단어라 붙었을 뿐"이라며 "단역과 엑스트라 등으로 영화·드라마에 출연한 청각장애인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최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학창 시절부터 가수 보아의 팬이었다고 한다. "청각장애가 있어 웬만한 음악을 즐기지 못하는데 보아는 발성이 탁월해 고음을 부르는 소리가 제 귀에도 잘 들렸어요. '아틀란티스 소녀' 춤을 따라 췄죠." 인터넷에 올린 그의 사진을 본 작가의 섭외로 한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소년 보아'로 출연했다가 그 작가의 권유로 사진 모델을 시작한 뒤 영화 출연까지 하게 됐다.

상대 배우와의 감정 교환이 중요한 연기자에게 청각장애로 인한 의사소통의 제약이 힘들 법하지만, 김씨는 "장애인이 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며 "상대방 역할도 일상생활 중에 수없이 겪는 차별과 편견을 대표하기 때문에 감정 잡는 건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를 힘들게 한 건 오히려 비장애인들의 '배려'였다. 제작진이 김씨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보청기를 끼도록 했는데 오히려 불편했다고 한다. "극 중 엄마가 저를 부르는데 듣지 못하는 연기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전 그 소리를 듣지 못해야 하는데 보청기 때문에 너무 잘 들려서 못 듣는 척 연기하기 힘들었죠. 저를 배려하겠다며 준비한 보청기지만, 결국은 비장애인들의 편리를 위했던 거죠. 어중간한 도움이나 조언을 주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는 없는 걸까…."

김씨는 "배우 생활을 지속할수록 답답한 마음이 커진다"고 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장애인 히어로' '흑인 인어공주'가 등장하는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데 한국 영화계에선 개선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애인은 왜 마냥 착하고 불쌍하게만 묘사돼야 하는 걸까요?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정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조선일보> 김영준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