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2/2020042200169.html

93세 해녀의 장학금 1억원… 평생의 땀과 눈물, 알알이 맺혔네

"

90대 할머니가 한평생 해녀 물질로 모은 재산 1억원을 대학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사는 부금현(93) 할머니는 최근 "훌륭한 인재를 기르는 데 써 달라"며 다니는 교회에서 소개해 준 삼육대학교에 발전기금 1억원을 전달했다. 21일 성산읍 자택에서 만난 부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지팡이를 짚어야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불편했다. 방 한쪽 구석에는 40년째 쓰고 있는 장롱과 화장대가 놓여 있었다. 집 안에 가전이라곤 오래전 조카들이 사다 놓은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가 전부였다. 세탁기조차 없었다. 부 할머니는 겨울에도 직접 손으로 빨래해 왔다. 아담한 단층 주택 마당 텃밭에는 불편한 몸에도 할머니가 손수 심어 이웃에게 나눠줄 마늘이 자라고 있었다.

부 할머니는 17세 때부터 물질을 시작해 81세까지 60년 넘게 해녀로 일했다. 해녀인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물질을 배워 해녀가 됐다. 학교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의지할 자식도 없던 부 할머니는 그때부터 억척스럽게 일만 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물때를 기다렸다가 바다에 나가 소라와 전복 같은 해산물을 캤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육지에서 보리, 콩 밭농사를 짓고 품앗이를 했다. 해가 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부 할머니는 "남이 짐 1개 질 때 나는 2~3개씩 지며 닥치는 대로 일만 했다"며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것도 모르고 살았고, 나이 들어 경로당에 갔을 때 주는 점심이 유일한 외식이었다"고 했다.

80세가 넘어 바다 잠수가 힘에 부치면서 해녀 물질을 그만뒀다. 물질을 나가다 오른쪽 눈을 다쳐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 할머니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올해 초 계단에서 내려오면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고, 수술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할머니에게 쉼이 찾아왔다. 자식이 없는 부 할머니는 돈이 모일 때마다 다니는 교회에서 추천해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수십년간 할머니가 시시때때로 전달한 100만원 안팎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80명이 넘는다. 삼육대 신학대학장을 지낸 고(故) 한성보 교수와 오만규 전 교수도 대학 시절 부 할머니에게서 장학금을 일부 지원받았다.

부 할머니는 "남을 도와주는 게 기쁜 일이지,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은 별로 기쁘지 않았다"며 "이제껏 살아오면서 제일 잘한 일은 모든 재산을 정리해 남에게 기부하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큰돈은 아니지만 이 나라를 이끌어 갈 훌륭한 인재를 기르는 데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육대 관계자는 "할머니의 뜻에 따라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학교 발전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오재용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