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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포착한 戰後의 낭만… 티셔츠에 담았죠"

한영수문화재단 대표를 맡고 있는 한선정(51)씨는 "아버지가 세련된 분이었기 때문에 사진에도 그런 분위기가 묻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한씨 아버지인 고(故) 한영수(1933~1999)는 1950~60년대 서울 풍경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포착했던 사진가다. 당시의 서울을 기록한 사진에 대체로 6·25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것과 달리, 한영수는 양장점 쇼윈도를 바라보는 소녀, 설레는 표정으로 아카데미극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앵글에 등장시킨다. 그의 흑백사진은 고단했던 시절에도 천연색의 생활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이후 한영수는 국내 1세대 광고·패션 사진가로 활동했고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미국 LACMA미술관과 국제사진센터(ICP)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한영수가 본 서울은 지난달 티셔츠 등 옷으로도 나왔다. 캐주얼 브랜드 빈폴에서 제안한 협업이 성사됐다. 빈폴 이정림 프로는 "전후(戰後) 서울의 낭만을 주제로 잡고 여러 사진을 검토했다"면서 "디자인 방향과 맞을 법한 사진을 더 조사해 보면 대부분 한영수의 작품이었다. 그의 사진에는 시적(詩的)인 느낌이 있다"고 했다. 한선정씨는 "한국 사진가가 패션과 협업한 사례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사진을 전공한 딸 한씨에게 아버지는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기법을 직접 배우진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라이프'지를 비롯해 아버지 서재에 빼곡한 사진집을 펼쳐보며 놀았던 게 시각적으로 훈련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학교 때 집에서 광고 촬영이 있는 날이면 문틈으로 플래시 불빛이 번쩍번쩍했어요. 야단맞으면서도 (형제 중에서) 제일 열심히 구경하던 게 저였죠." 딸이 대학에 진학하며 사진을 전공으로 택하자 한영수는 자신의 충무로 스튜디오를 쓰게 해줬다. 한씨는 "엄하고 무뚝뚝했던 아버지가 어릴 땐 1년에 하루 딱 5분씩만 보여주던 스튜디오였다"고 했다.

아버지 작고 후 한씨는 재단을 설립하고 한영수 작품의 아카이브(축적된 기록·자료)를 구축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사진집 '서울, 모던 타임스'(2014)를 냈고 이후 어린이, 한강 주제의 작품집도 나왔다. 지금은 여성을 포착한 사진을 모아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출간을 준비 중이다. 한씨는 "1950~60년대 필름 320통 정도를 주제별로 분류하면 사진집 6~7권이 될 것"이라면서 "60년대 중반 이후의 광고사진이나 풍경사진도 책으로 펴낼 계획"이라고 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한씨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서두르라는 것이었다. 6·25 세대가 퇴장하면 한영수라는 사진가도 잊힐 테니 시간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한씨는 "팬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게 놀랍다"고 했다. "누구나 사진을 쉽게 많이 접하는 시대에 좋은 사진을 알아보는 안목도 높아지는 것 같아요. 지금의 20~30대는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영수가 세련되게 표현해낸 사진에서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보는 거죠."

<조선일보> 채민기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