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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 같은 珍味, 뜨끈함이 술잔을 부르네

이열치열로 다스려라, 어복쟁반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음식!"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어복장국(어복쟁반)을 냉면과 함께 평양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 꼽았다. 차가운 냉면이 겨울 음식이듯, 따뜻한 어복쟁반은 여름 음식이었다고 한다. 옛말에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하여, 열(熱)은 열로써 다스리라고 했다.

◇고향의 맛 '남포면옥'

서울 사람들이 어복쟁반을 가장 먼저 접하는 곳으로 유명한 중구 '남포면옥'은 평양이 고향인 이운용 창업자가 시장에서 먹던 그 맛을 잊지 못하고 1965년 식당을 열 때 어복쟁반을 메뉴에 넣었다. 삼대째 노포(老鋪)를 이어가는 이준호 전무는 "평양에서 어복쟁반은 이른 아침에만 파는 음식이었다고 들었다"며 "할아버지가 기억하고 재현했던 그 맛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집 맛의 비결은 한우 양지로 푹 고아낸 진한 고기 육수. 여기에 젖소의 유통(가슴살), 파, 죽순, 표고·느타리·새송이버섯 등이 들어간다. 살짝 느끼해질 때쯤 이 집 자랑인 동치미를 한 모금 먹으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어복쟁반에 들어가는 유통은 고기에서 살짝 우유 향이 나 호불호가 갈린다.

◇주당들의 성지 '피양옥'

해장하러 갔다가 더 취하게 되는 음식이 있다. 어복쟁반이 그렇다. 평양에서는 주당들의 아침 해장 음식으로 발달했지만, 어복쟁반을 술 없이 먹는다는 건 고문이다.

서울 강남구 '피양옥'은 젊은 주당들의 성지다. 어복쟁반 한 그릇 시켜놓고 계속 육수를 추가하면 술이 끝도 없이 들어간다. 소주, 맥주, 와인 등 주종도 가리지 않는다. 이곳 어복쟁반에는 양지, 사태, 업진(뱃살), 양, 유통, 머리 고기, 스지, 살치살 등 8가지 고기가 나온다. 김호찬 대표는 "고기 부위마다 맛과 향이 달라 다 따로 삶아 낸다"고 했다. 쑥갓, 대파 등 초록 채소 위에 다양한 부위의 삶은 고기, 빨간색 생살치살, 노란색과 흰색의 계란이 올려진 모습은 화폭에 그려진 그림 같다. 여기에 송이버섯까지 추가해 올리면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느끼한 고기 맛은 시원한 배추가 잡아준다.

◇팔방미인 '진미평양냉면'

냉면 잘하는 집이 어복쟁반도 잘한다. 서울 강남구 '진미평양냉면'은 장충동 평양면옥의 임세권 주방장이 독립해 개업한 곳이다. 고기는 차돌박이와 사태, 채소는 쑥갓과 깻잎, 대파, 팽이버섯 정도만 들어간다. 그 청량한 단순함이 평양냉면처럼 담백한 감동을 만든다. 쑥갓과 깻잎 향이 고기와 잘 어우러진다.

원래 냉면과 불고기만으로도 유명한 곳이라 평일 낮 3시에도 줄을 서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최근 서울 서초구에 문을 연 분점 '더진미평냉'이 줄이 덜하다. 보통 어복쟁반에는 만두와 메밀로 만든 냉면사리를 곁들여 먹는다.

<조선일보> 이혜운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