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소 55년만에 첫 여성 소장 정희선 씨 인터뷰

"시키는 일만 하기 싫어서 가짜꿀 검사법 직접 개발…2년차때 바로 주목받았죠"
여성으로 롱런한 비결은 전문성과 따뜻한 리더십
고생하는 감식팀ㆍ부검의 등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늘 고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문을 연 지 올해로 55년째다.국과수 사상 첫 여성 소장인 정희선 소장이 2008년 7월 취임한 지 벌써 1년9개월이 지났다. 힘찬 목소리에 기분 좋은 웃음소리로 국과수 분위기를 바꾸고 있는 정 소장을 지난 1일 서울 신월동 국과수 소장실에서 만났다.
그녀는 전 직원의 개인이력까지 줄줄 꿰고 있을 정도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따뜻함으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과수` 하면 시신과 차가운 부검대가 우선 연상된다. 여성들이 버티기 힘들 것 같은 국과수 조직을 이끌고 있는 그녀를 만나 자신의 삶과 직업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 남 시키는 것만 해선 안돼
정 소장은 숙명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약사다. 다른 대학동기들처럼 약국을 차리고 안정적으로 살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국과수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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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 시키는 일만 하다가 영 안 되겠다 싶어 용감하게 계장님한테 얘기를 했어요. `저도 보람된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요." 그때 마침 전국적으로 가짜 꿀 파동이 터진다. 1980년대 초반 가짜 꿀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각되면서 국과수에서 부랴부랴 기계를 사고 가짜 꿀 진위 여부를 판정하는 시험법을 만들게 됐는데 정 소장이 일을 맡게 됐다. 정 소장은 "장비에 꿀을 집어넣고 나온 것을 보고 가짜를 판별하는 방법을 만들었어요. 나중에 꿀을 대량 밀제조하던 사람이 잡혀서 경찰이 어마어마한 양의 가짜 꿀을 수거해 왔어요. 그때 만들어 놓은 판별법을 활용한 덕분에 진위 판별이 쉽게 됐죠." 이 일 덕분에 2년차 정희선 소장은 금세 조직 내에서 주목받게 됐다.

◆ 여성 직장인으로 힘든 부분도 많아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하는 데다 워킹맘의 역할까지 잘 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여느 엄마들처럼 정 소장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녀는 "딸이 학원에서 안 온다든가 하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기도 한다"면서 "일이 바빠서 신경을 많이 못 써주는 게 늘 안쓰럽다"고 말했다. 그나마 과장 직함을 가진 뒤 딸을 가졌기 때문에 육아가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여자 후배들한텐 미안한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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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다. 정 소장은 "우리 부모님은 저를 믿고 맡겨주셨는데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너무 간섭하지 말고 본인이 좋아하는 길이 있다면 그 길로 가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다양한 분야에 관심 가지고 공부할 것
첫 여성 국과수 소장이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정 소장에게 후배 여성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성공 노하우를 물었다.
정 소장은 "전문성을 갖겠다는 마음을 먹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성이란 게 한 분야만 깊게 파는 지엽적인 것이어선 곤란하다는 게 정 소장의 조언이다. 그는 "미래에는 한 분야의 전문성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약학에 대한 공부를 했다면 그 다음엔 경제에 대한 걸 공부한다든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장에서 일할 때 이 직장의 미래에 무엇이 필요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미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평소에 길러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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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재화 기자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