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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협상 첫 제안은 세게… 선제공격 퍼부어라

자동차 엔진 생산업체 A사 김 사장은 요즘 부품 단가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납품을 맡고 있는 B사가 갑자기 부품 단가를 10% 올리겠다고 나온 것 아닌가. B사의 품질을 따라갈 만한 업체가 없어서 무조건 거절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단가를 따져보니 원자재값 평균 상승률인 5% 정도의 가격 인상까지는 양보해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여기서 김 사장은 고민에 빠졌다. 아예 처음부터 서로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5% 인상을 제안할까, 아니면 단가 동결을 주장하며 세게 나가야 할까?

협상 첫 제안의 딜레마,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련한 협상가들은 첫 제안을 세게 한다는 것이다. 강하게 선제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이것을 협상에서는 '목표 높이기(에임하이·aim high)'라고 한다. 왜 목표 높이기를 하는 걸까? 협상에서 처음 제시된 정보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닻 내리기(앵커링·anchoring) 효과'때문이다. 협상 상대가 느끼는 심리적 기준점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오고 싶다면, 처음부터 세게 나가는 편이 유리하다.

강한 선제공격의 또 다른 효과는 상대방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들어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자원봉사 참여 캠페인을 벌이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주말 자원봉사에 참여해 주세요"라고 하면, 많은 경우 선약(先約)을 핑계로 거절한다. 이번에는 더 과감하게 캠페인을 펼친다. "8주 동안 주말마다 자원봉사에 참여해 주세요." 당연히 대다수 사람들이 거절한다. 이 때 다시 묻는다. "8주 동안 매주 참여하는 것이 어렵다면, 이번 주말 딱 한 번만 참여해 줄 수는 없나요?" 한 번 거절한 것도 미안한데, 두 번째 부탁까지 거절할 수 있겠는가? 기회는 바로 이때다. 처음에 했던 것보다 작은 요구를 하면 첫 거절로 마음의 빚을 졌다고 느낀 상대가 다음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김 사장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처음부터 5% 단가 인상률을 제안하는 것이 더 쉬운 협상으로 이어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가 인상은 없습니다!" 라고 세게 나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B사에 '단가 동결' 이라는 닻을 내려둘 수 있다. 그리고 B사가 거절하면 "그럼 5%까지는 양보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면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더 쉽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무작정 '단가 동결'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자칫 B사가 김 사장과의 거래를 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원자재 업체와는 단가 인상 없이 계약했다. B사에만 단가를 올려주면 형평성에 어긋난다" 등 왜 단가를 올려줄 수 없는지 합리적인 근거를 내밀어야 한다.

내 요구에 대해 상대가 단번에 안 된다고 할까 봐 걱정인가? 그렇다고 지레 양보해 버리자니 찜찜한가? 일단 목표를 높게 제시하라! 단 상대가 납득할 만한 이유도 함께 제시하는 것을 잊지 말자.

이계평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김민경 IGM 세계경영연구원 주임연구원

제공 : 조선일보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