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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떨고 있는 동포를 그냥 둘 수 있나요"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 광주 광산구 월곡동에 자리 잡은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는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 본토와 국경지대인 폴란드, 루마니아, 몰도바 등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고려인들이 당장 필요한 식료품 수급부터 비자 발급까지 이곳에서 도움을 얻어 해결한다. 그중에는 출산 장소를 문의하는 임신부도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인터뷰에서 "아직 위험 지역에 남아 항공권을 기다리는 고려인 동포가 500명에 달한다. 이들을 데려오는 문제부터 입국한 사람들이 무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까지 시급하지 않은 문제가 하나도 없다"며 "하필 비행기표 가격이 크게 오른 시점이어서 지역사회 도움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려인마을은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고려인 동포 난민들의 국내 귀환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펼쳤다. 고려인마을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6일까지 모인 성금은 3억7871만500원에 달한다. 기부자 중에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1000만원을 후원한 시민도 있다. 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항공권과 침구, 식료품 같은 현물도 전달됐다. 고려인마을은 이 같은 도움을 등에 업어 고려인 339명에게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항공권을 제공하고, 그들이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숙소 등을 지원했다.

피란민들을 한국으로 들이는 과정은 일견 무모해 보였다. 피란민들이 와츠앱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려인마을 측에 입국 의사를 밝히면 신 대표를 비롯한 고려인 마을 관계자들이 여권·비자 소지 여부를 확인한다. 이후 모금액으로 항공권을 구입하고, 메신저로 이티켓(e-ticket)을 발송해 입국을 돕는 방식이다. 신 대표는 "비용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동포들을 생각하면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입국한 고려인들이 한국 사회에 자리 잡게 돕는 일도 신 대표 몫이다. 그는 비자 상태에 따라 최소한 생활비는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구직 활동을 독려·알선하고 있다. 법무부의 위임을 받아 고려인들이 외국인 등록증을 받을 때 필요한 법정 의무교육을 진행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신 대표는 2001년 한국인 사위의 초청으로 입국해 충남 서천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한때 전남 함평 콘크리트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신 대표와 이 목사는 2001년 고려인 세 가구가 월곡동에 정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고려인마을을 7000여 명이 모여사는 곳으로 키웠다. 신 대표는 2009년 자비를 들여 고려인지원센터를 열고 상주하면서 입국 고려인들을 상대로 숙식 제공, 일자리 알선 같은 도움을 줬다. 한국어 통역을 지원하고 임금 체불 문제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도왔다. 지금 고려인마을이 운영하는 기관·단체는 어린이집과 고려인지역아동센터, 고려인진료소, 고려에프엠(FM) 방송, 월곡고려인문화관 등을 포함해 20여 곳에 달한다.

<매일경제>이진한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