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320712

은퇴를 희망으로 만드는 삶의 자세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하지만 노래는 노래일 뿐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간 근로시간이 2100여 시간으로 선진국에 비해 적게는 400시간, 많게는 600시간 더 일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집을 사는 일을 넘어 은퇴한 후에는 자유롭고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은퇴 후에도 집안 행사 또는 경조사 참석, 친구ㆍ선후배들과 만남 등을 예전처럼 하면서 나름 꿋꿋하게 살고 싶은 게 소시민적 바람일 것이다.

반면 은퇴 관련 뉴스는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 우울한 면이 훨씬 더 많다. 은퇴자들을 겁박(劫迫)하는 수준이다. 노후자금으로 6억~7억원이 필요하다거나 은퇴 준비가 안 된 사람이 더 많은 가운데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오고 있다는 소식 등이다. 700만명이 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가 대거 퇴직하면서 김밥집이나 동네슈퍼 등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해서 신용불량자가 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도 빼놓을 수 없다.

노후자금으로 6억~7억원이 필요하다는 계산 근거를 한번 따져보자. 은퇴 후 30년을 더 사는 사람이 매월 생활비로 200만원을 쓴다면 30년×12개월×200만원=7억2000만원이라는 계산 결과가 나온다. 만약 매월 생활비를 150만원으로 줄이면 5억4000만원이 된다. 그럼 6억~7억원 정도 자산을 가지고 은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자산은 3억원. 이 중 부채 5200만원을 빼고 나면 순자산은 2억5000만원 남짓이다. 자산이 가장 많은 연령대인 50대를 봐도 가구당 평균자산 4억원에서 부채 7000만원을 빼면 순자산은 3억3000만원이다.

50대 순자산 평균이 3억3000만원이라면 우리 국민 대다수가 6억~7억원에서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상위 부자들에게 자산이 몰려 있는 것을 감안하면 50대 중 3억3000만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가구 비중은 절반을 넘어 60~70%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자금으로 6억~7억원이 필요하다는 말은 현실을 무시하는 이른바 식자(識者)들의 과장된 염려가 가져온 우환이 아닐까? 실제로 6억~7억원이 필요하다면 우리 국민 중 80~90%가 노후 준비가 안 된 상황이다. 이런 뉴스를 듣고 "어이쿠, 이거 큰일 났구나" 하면서 실망하고 우울해한 서민이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정부와 사회, 언론은 물론 은퇴 관련 기관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한 사람들에게 준비가 안 돼 있다면서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을 겁박해 불안감을 키운 결과는 돈 있는 계층까지도 움츠러들게 해 소비 부진으로 인한 일본형 장기 불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것은 변함 없는 경제논리다. 돈이 풍족한 사람에게는 여유롭게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돈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노후가 피곤하지 않도록 정부가 복지제도를 보완하는 동시에 사회와 가정, 은퇴 관련 기관들이 도와줘야 한다.

은퇴는 일(work)에서 은퇴하는 것이지 삶(life)에서 은퇴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겪어야 할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은퇴 또는 노후 준비에 너무 늦었다는 말은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인정(認定), 열정(熱情), 긍정(肯定)'은 없던 희망도 만들어낸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현재에 충실하는 '열정'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희망이자 은퇴 준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제공

최성환 대한생명 은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