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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찬란한 딸과의 시간… 그렇게 아빠가 된다

부모가 되면 자라나는 아이의 나날을 기록하리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활에 쫓기다 보면 꾸준히 실천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림책 작가 이석구(46)가 딸(11)과 함께한 일상을 그림일기로 남길 수 있었던 건 그것이 얼마쯤 직업적 시도였기 때문이다. 상황을 표현하는 연습 삼아 그날그날의 이야기를 그리고 인터넷에 올렸다. 딸이 대여섯 살 됐을 무렵부터 그려온 일기를 모아 최근 에세이집 ‘함께 오늘을 그린다는 것’(문학동네)을 냈다.

색연필로 그린 그림처럼 소박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함께 만든 작은 눈사람을 집에 데려와 냉장고에 넣고 바라보는 장면에서 미소 짓고, 초인종 소리에 딸인 줄 알고 크게 ‘누꾸쎄요~옹’ 했다가 택배 아저씨여서 당황한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다가, “손을 잡으면 언제 이렇게 컸나 싶고, 이 아이가 언제까지 내 손을 잡아 줄까 생각하게 된다”는 대목에선 뭉클해지기도 한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똑같지는 않은 하루,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하루”들이 이어진다. “전에 아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땐 프리랜서인 제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많았어요. 주로 인형 놀이나 동화 구연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함께하며 지냈죠.” 이제 아빠들도 엄마의 영역에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당한 육아의 주체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 아빠의 개인적 기록이면서, 완고했던 이전 세대 아버지들과 달라진 요즘 아빠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어린아이를 기르는 부모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고된 육아의 동병상련이 전부는 아니다. ‘딸이 너무 귀엽다’부터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까지 공감의 폭이 넓다. “남편한테 (본보기로) 보여주고 싶다”는 반응도 많은데 이석구는 “사실 소파에 늘어져 있을 때도 많다. 너무 따뜻하고 좋은 아빠로만 그려진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정작 그가 지향해온 구체적 아빠상(像)은 없었다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아빠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하나의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자신의 가치관에 아이를 맞추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아이한테도 맞는 거라고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렇게 살아야 옳다고 먼저 제시하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했죠.”

딸은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이제 가끔 자기 방 문을 닫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빠와 시간을 보낸다. 이석구는 “일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아빠랑 노는 시간”이라고 했다. “저는 근무시간이 정해져있지 않다 보니 자꾸 작업하는 방에만 틀어박히게 돼서 시간을 정했죠.” 요즘은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같이한다. 게임이라면 질색하는 부모도 많지만 그는 “아이가 재밌어하고 좋아하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했다.

< 조선일보> 채민기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