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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 가면… 스크린 있고 공연장도 있다?
광명 가학광산동굴
동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바람에 등을 타고 흐르던 땀이 어느새 멈췄다. 갱도(坑道)로 들어서자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밖은 한여름인데, 안은 딴 세상이었다. 에어컨 수백대를 한꺼번에 틀어놓으면 이런 시원한 바람이 나올까. 경기도 광명에 있는 가학광산동굴이다. 갱도를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안전모를 쓴 관광객들 얼굴에 입김이 서리고 준비해 온 긴팔 옷을 찾아 입느라 분주하다. 일년 내내 12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1912년 채굴을 시작한 가학광산은 1972년 폐광될 때까지 60년 동안 금·은·동·아연 등을 채굴한 수도권 최대의 금속 광산이었다. 회사 부도로 방치되다 소래포구 새우젓을 숙성시키는 저장소로 사용하던 중 광명시가 매입해 2011년 8월 시민에게 개방했다. 동굴 안에 공연장을 만들고 영화를 상영하면서 시민 휴식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갱도 길이는 7.8㎞, 깊이 275m 규모로, 이 중 1㎞ 정도가 개방되어 있다. 갱도를 따라 가로등처럼 전등이 켜져 있고, 통로 한쪽에는 바위틈에서 새어나오는 물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물길이 연결되어 있다.
동굴 입구에서 수십m 정도 일직선으로 들어가자 갱도가 좁아지는가 싶더니 길은 양쪽으로 갈라졌다. 갱도는 좌우로 갈라지기도 하고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 위·아래층으로 연결되면서 미로(迷路)처럼 복잡해졌다. 연중 서늘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어 새우젓, 와인, 막걸리, 김치 등 발효 식품을 보관하는 장소도 따로 만들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니 강당처럼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동굴 벽에 걸린 300인치 스크린에는 애니메이션 '라바'가 상영 중이었다. 동굴 영화관이다. 작은 돌들을 계단식으로 쌓아 여러 층 평지를 만든 후 의자를 설치한 객석에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과 단체로 소풍 온 유치원생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빠져 있었다. 동굴 영화관 벽은 거칠게 깎여나간 바위 결이 생생하게 드러나 보였다.
다른 갱도를 따라 들어가니 이번에는 공연장이 나왔다. 이 동굴에서 가장 넓은 곳이란다. 지금은 무대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동굴 영화관과 공연장은 동굴 내 널찍한 공간인 '동공'에 들어섰다. 동공은 광부들이 일하다 잠깐 쉬던 휴식 공간. 가학동굴에는 이런 동공이 50여개나 된다고 한다.
김상범 광명시 동굴개발기획TF팀장은 "도심에서 가까운 데다 동굴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어 2011년 개방 이후 17만명이 다녀갔다"며 "요즘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관광객들이 주말이면 5000여명씩 몰리는 관광 명소가 됐다"고 했다.
조선일보 최홍렬 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