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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氣 담뿍 받았나… 걸어도 걸어도 가볍기만 하네

아침 햇살에 모습을 드러낸 지리산 자락에 운해(雲海)가 펼쳐졌다. 멀고 가까운 연봉(連峯)들이 4~5겹씩 사방을 에워싼 가운데로 하얀 구름의 강이 흘러가는 것도 같다. 초가을 햇살이 구름 위로 반짝였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5분 거리, 이런 장관을 볼 수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2013 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경남 산청 동의보감촌이다. 지리산 동쪽 끝자락인 왕산과 필봉산 중턱에 있는 행사장에는 지난달 6일 개막 이후 130여만명이 찾았다. 해발 400~500m 161만㎡ 규모로 만들어진 행사장에는 지리산의 맑은 기운을 느끼려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다.

아침 녘 지리산을 덮었던 하얀 구름이 땅으로 내려와 꽃으로 피어난 것일까. 구름이 사라진 산 중턱이 온통 구절초 꽃밭이다. 하얀 꽃잎이 산등성이를 뒤덮은 모습은 마치 눈이 온 것처럼 보인다. 구절초는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울 뿐 아니라 꽃의 따뜻한 기운은 부인병에 좋고 위를 편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행사장 내 허준 순례길 등지에는 구절초 150만본을 비롯해 당귀, 취나물, 곤드레, 산마늘, 눈개승마 등 약초가 심겨 있다. 전통의약엑스포답게 행사장 전체가 약초로 가득한 셈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허준의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기념한 행사인 만큼 동의보감에 있는 한방 원리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전통 의학 원리를 쉽게 설명해주는 주제관을 비롯한 전 세계 20여개국 전통 의학을 소개하는 세계관, 지리산에서 자라는 약초들을 유리온실에 전시한 산청약초관, 동의보감 내용과 학술적 가치를 보여주는 동의보감 박물관 등이 볼거리다. 행사장을 걷다 힘들면 순례길 중간에 마련된 체질별 족욕(足浴) 체험장을 찾으면 좋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행사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한방 기(氣) 체험장. 석경(石鏡)은 청동기시대 동경(銅鏡)처럼 돌에 새긴 거울 모양으로, 관람객들은 석경 아래 돌부리에 이마를 대고 기를 받는다. 한 관람객은 "내 마음을 돌아보고 차분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귀감석(龜鑑石)은 거북을 닮은 127t 거대한 바위로, 온몸을 바위에 붙이고 소원을 빌고 밝은 기운을 듬뿍 받아들이는 곳이다. 마치 바위에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모습 같다.

한방체험관에서는 동의보감이 전하는 건강 비법을 체험할 수 있다. 피로 푸는 베개, 스트레스 진단, 치유 터널 걷기, 족욕·반신욕, 침 체험 등을 하다 보면 몸이 개운해진다.

최구식 엑스포 집행위원장은 "우리의 한의약은 물론 세계 각국의 전통 의약을 보고 체험하면서 도시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지리산 힐링 엑스포'"라고 했다. 엑스포는 오는 20일 막을 내리지만, 동의보감촌의 각종 시설과 힐링타운 등은 연중 개방된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행사장을 몇 시간 걸었는데도 이상하게 피곤하기는커녕 발길이 가볍기만 하다. 아마 지리산의 맑은 기운을 몸과 마음에 담뿍 담았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조선일보 글=최홍렬 기자 / 사진=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