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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생활비 천양지차… 돈은 윤활유일 뿐, 어떻게 살것인가가 중요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의(衣)·식(食)·주(住)와 안전의 욕구가 해결되면 더 많은 것을 꿈꾸기 시작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나아가 궁극적으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간 우리의 노후설계는 금융공학적 관점에 치중돼 이뤄져 왔다. '평균생활비 200만원, 60세에 은퇴하면 100세까지 필요자금 7억원'이라는 공식이 보편화돼 있다. 수입은 중단되고 지출은 늘어날 것이라는 전제하에 돈과 관련된 노후준비 방법을 제시해왔다. 이처럼 경제적 곤란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한국인이 '은퇴'를 생각할 때 주로 부정적 감정을 연상하게 돼 버렸다.

◇은퇴 후 현금흐름, 다양한 소득원(源)에 집중하라
은퇴 후 필요한 생활비를 논할 때, 이는 '평균적 생활비' 개념으로 개개인에게 두루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개인의 은퇴 설계는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개념이어야 한다. 최소생활비 133만원을 가지고 여유로운 은퇴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실제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연령·학력·거주지역 등에 따라 '최소 노후생활비' 규모가 천양지차인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졸업자의 경우 부부 기준 최소 노후생활비로 월 115만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대졸 이상은 월 192만원 필요하다고 답했다.

결국 개인의 은퇴 필요생활비는 은퇴 후 어디에 살 것인지, 누구와 살 것인지,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등 희망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 돈 중심 아닌 삶과 가치 중심의 은퇴 설계 필요
사람들은 은퇴 시점이 다가올수록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은퇴를 앞둔 10여년 전에는 은퇴 후 삶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갖고 '상상'의 나래를 펴지만 막상 그 시점이 다가올수록 '우울'과 '분노'를 표출하고, 결국은 현재의 삶을 그냥 '수용'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처음부터 달성하기 어려운 은퇴 필요 자금 규모에 지레 겁을 먹고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노후 자금 규모와 수준은 결국 은퇴설계의 본질이 아니다. 돈은 은퇴 후의 삶을 위한 윤활유와 같은 수단이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인식이 변하고 있다. 2011년 HSBC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응답자들은 행복한 은퇴 생활의 조건으로 건강(5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은퇴 자금 자체보다는 잘 짜여진 은퇴 설계(48%)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46%), 사랑하는 가족·친구와 함께하는 것(43%) 등도 꼽혔다. 소득 2만달러를 넘어 3만~4만달러 시대의 은퇴 설계의 관점이 돈의 문제가 아닌 노후에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갈 것인가 하는 개인적 가치발굴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연구위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