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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힘으로 농업 블루오션 열었죠

정부가 농산물 유통 성공사례 지목한 ‘언니네텃밭’ 김정열씨

새파랗게 어린 아가씨가 왜 여길 왔어? 서울서 대학 다니고선 졸업도 안 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24년 전 경상북도 상주시의 한 마을에 스물네 살 먹은 여대생이 혼자 걸어 들어왔다. 농사 지을 줄도 모르면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려와 남의 집에서 지내던 여대생은 어느덧 `농촌드림(dream)`을 만들며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언니네텃밭사업단`을 이끄는 김정열 단장(48)의 이야기다. 

대학 때의 이른바 `농활(농촌봉사활동)`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노인만 남아 황량해져가는 농촌 풍경과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농사 결정은 대부분 남자가 하지만 정작 밭일ㆍ논일은 여자가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여성의 힘으로 농촌을 살려내고 싶었다. 

김 단장이 일하는 `언니네텃밭사업단`은 농촌 여성들이 가꾼 제철 유기농 야채와 달걀, 두부 등을 종류별로 소박하게 모은 농산물 꾸러미를 1~2주에 한 번 소비자들에게 배송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사업에 참여한 여성 농업인 중 약 70%가 55세 이상의 나이 든 여성이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사업을 통해 국제결혼 등으로 이주한 사람, 귀농한 사람을 포함해 전국 16곳에서 150여 명의 여성 농업인이 2000여 명에 이르는 소비자들의 `농사짓는 언니`가 됐다. 

농업은 전통적으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 산업`이었지만 이제는 비교우위 없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일쑤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졸업을 포기하고 아가씨 농사꾼으로 시작한 김 단장은 "남들처럼 취업해 평범하게 사느니 농촌에 눌러살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삶을 살고 싶었다"며 "쌀 위주 농사나 복잡한 유통 단계로 인한 문제 해결이 쉽지는 않지만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했다는 `언니`를 보았을 때 제 마음이 다 뿌듯했다"고 했다. 

같은 동네에서 생산자 공동체를 꾸린 여성 농민들이 제철꾸러미를 만드는 작업만 하는 것은 아니다. 김 단장과 `언니들`은 매일 모여 머리를 맞대고 소비자들에게 줄 편지를 쓴다. 6년째 꾸러미를 배달시켜 먹는 한 소비자가 `건강이 좋아졌다`고 보낸 편지 같은 것들이 이들에게 신바람을 넣어준다. 매주 상주시의 어려운 학생과 교도소 무기수 가족에게 꾸러미를 무료로 보내는 것도 이들의 수다에서 시작된 일이다. 

모심기를 비롯해 요즘 한창 농번기라는 김 단장은 바쁜 일과 속에서도 토종 종자를 공부 중이다. 토종 양대콩을 키운다는 그는 "효율성 못지않게 다양성도 경쟁력의 한 축이 된다고 생각해요. 다국적기업이 파는 유전자 변이를 거친 씨앗 말고 우리 자연이 만드는 씨앗을 심어 소비자와 땅과 농민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라며 또 다른 꿈을 전했다. 

<매일경제> 김인오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