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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빛 찾아준 분, 잊지 않겠습니다
각막 기증받은 시각 장애인 두 명… 기증자 가족에게 감사 편지 보내
서울 성동구 윤근원(여·60·사진)씨 집에 지난 7일 수취인이 적혀 있지 않은 편지 3통이 배달됐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거쳐 온 편지에는 '고마우신 분에게'라고만 씌어 있었다. 조심스레 봉투를 뜯어 편지를 펼쳐든 윤씨는 첫 문장을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일주일 전 남편 전성호(68)씨의 양쪽 눈 각막을 하나씩 이식받은 시각 장애인과 그 가족이 보내온 편지였다.
택시 운전으로 아들딸을 키운 남편 전씨는 2012년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그는 아내 윤씨에게 "돈이 없어 재산은 나눌 수 없지만 나중에 장기라도 기증해 세상을 돕고 싶다"고 했다. 기증 서약 1년여 만인 지난해 10월 전씨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병세가 악화된 어느 날, 전씨는 종이에 뭔가를 쓰다가 손에 맥이 풀려버렸다. '장기기'라는 석 자였다. "당신 장기 기증을 말하려는 거예요?" 아내의 물음에 전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와 상의를 한 윤씨가 "각막 기증과 사후 시신 기증이 가능하다"고 전하자 병상의 전씨는 힘겹게 "만세"라고 말했다. 투병하던 남편 전씨는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사흘 뒤 그의 각막을 이식하는 수술이 이뤄졌다.
편지 한 통의 주인공은 정종현(56)씨였다. 정씨는 2년 전 공장에서 작업하던 중 물건이 떨어지는 사고로 눈을 다쳐 시력을 잃었는데 각막을 기증받아 한쪽 눈이 앞을 보게 됐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의 가정에도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지면으로나마 인사드립니다."
다른 두 통은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게 된 김재례(72)씨의 딸 이은주(39)씨 모자가 쓴 편지였다. 은주씨는 "누군지도 모르는 분에게 각막을 기증받고 나에게도 이런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하며 엄마의 환한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앞으로 엄마께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세상을 많이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윤씨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고는 장기기증본부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하늘에 있는 남편도 편지를 보고 기뻐할 겁니다. 꼭 건강해지셔서 우리 남편이 못 본 것까지 열심히 세상을 봐주세요."
<조선일보> 남정미 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