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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책 사달라는 아들 보고 눈물이…

-수능 시험장된 서울소년원 사연
수능응시자 1년만에 4명→25명
"나가서 제대로 살고 싶다" 위기의식이 학생 의욕 불지펴
대학생 멘토들 도움도 한몫… 전국 유일 '소년원 시험장'으로

경기도 의왕 고봉중고등학교. 명칭은 '학교'인데 주변을 둘러싼 높이 2m의 담장 위엔 가시가 달린 철조망이 쳐져 있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자 녹슨 철문이 곧바로 '끼익~ 쾅!' 하고 닫힌다. 지문을 인식시키지 않으면 학생을 포함해 누구도 나갈 수 없는 이곳은 '교육 시설'인 동시에 '감호(監護) 시설'이다.

폭행·절도·강도 등 비행을 저지른 소년 240여명이 살고 있는 서울소년원 내 고봉중고교가 개교 25년이 된 올해, 처음으로 '수능 시험장'이 된다. 전국 1216개 수능 시험장 중 유일한 '소년원 시험장'이다. 지난해 4명이었던 수능 응시자가 올해 25명으로 늘자, 소년원 측이 경기도교육청에 시험장 지정을 요청한 결과다.

매년 3~4명이던 이 학교의 수능 응시자가 올해 25명으로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한영선 서울소년원장은 학생들을 제대로 공부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정직'을 가르치는 게 우선이잖아요." 검정고시 응시생 숫자를 교실당 25명에서 10명으로 줄이고, 책상 간격을 늘렸다. 커닝을 하는 학생은 바로 퇴실시켰다. 이런 '강수(强手)'에 그 동안 100%에 가까웠던 검정고시 합격률이 62%로 떨어졌다.

역설적으로 학생들 사이에 '공부하지 않으면 졸업장도 없이 나가게 생겼다'는 인식이 생겼다. 학생들이 책상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년원은 대학생 멘토들을 모집해 학생들의 검정고시 공부를 도왔다. 점수가 조금씩 오르자 학생들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치른 검정고시에선 합격률이 80%에 가까워졌다.

수능을 100일 앞둔 9월 초, 이 학교의 '수능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하루 2시간이던 수능 강의를 6시간으로 늘렸다. 수능 공부를 도와줄 외부 강사와 대학생들을 초빙했다. 소년원이 조금씩 달라졌다. 보호직 공무원들은 '입시 전문가'로 변신했다. 기초수급자, 농어촌 전형 등 학생들에게 맞는 입학 전형들을 연구해 올해 대학 수시 모집에서 9명을 합격시켰다. 수능 시험장 기준에 맞게 시설도 정비했다. 전에는 수업 시작종을 울리던 스피커에서 요즘엔 하루 두 번 '영어 듣기 평가'가 흘러나온다. 형광등도 밝은 것으로 바꿨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역시 학생들이다. 힘센 학생이 약한 학생에게 청소와 잔심부름을 시키던 소위 '셔틀 문화'가 사라졌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로 폭행, 사기 범죄 등을 저질러 왔다는 김모(19)군은 "수능이 코앞이라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잘 못 잔다"고 했다. 사고만 치던 아이들이 공부해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부모들 역시 행복하다. 이모(18)군 어머니가 말했다. "아들이 18년 만에 처음 책을 사달라고 했는데, 눈물이 났어요."

<조선일보> 의왕=이동휘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