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donga.com/3/all/20150302/69910869/1

‘해방둥이’ 새내기… ‘화가의 꿈’ 도전 자폐장애인

지난해 11월 전국에서 두 번째 많은 나이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뒤 “수능 날이 생애 최고의 벅찬 감동의 순간이었다”던 임원철 씨(71). 그가 2일 한남대에 2015학번으로 입학해 더 벅찬 감동의 순간을 맞았다. 이날 자폐의 장애를 가진 김민건 씨(20)는 배재대 교정에서 화가의 부푼 꿈에 젖었다.

○ 해방둥이 대학 새내기 되다
한남대 사회과학대학 도시부동산학과에 입학한 임 씨는 1945년생, 흔히 말하는 ‘해방둥이’다. 광복 직후의 혼란과 6·25전쟁, 그리고 그 후의 폐허와 가난 속에서 해방둥이들이 제대로 교육받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임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건축 자재 생산업에 종사하면서 평생을 보냈다.

은퇴를 앞둔 65세 때 딸에게서 한 통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떤 사람이 정년퇴직 후 ‘이젠 덤의 인생’이라며 30년을 즐겁게 보냈지만 90세에 이르러 즐기기만 한 30년은 허송세월이었다며 어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영원히 꺼져 버린 줄 알았던 임 씨 가슴속의 학구열에 불을 지폈다. 임 씨는 그 길로 학력인정 평생교육 시설인 대전 예지중고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수능을 보기까지 어렵고 신기한 기호들의 집합과도 같았던 영어 수학 등과의 씨름이 계속됐다.

○“자폐요? 이젠 내 세계 그릴 것…”

배재대 미술디자인학부에 입학한 김 씨는 네 살 때 자폐성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부모가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치료를 하다 아이가 미술에 빠른 반응을 보이고 즐거워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렇게 시작된 미술로 그는 대전예술고에 진학했다. 대학들이 주최한 미술실기대회에서 특선을 하기도 했다. 정규 수업 외에도 하루 8시간씩 대학입시에 매달렸다. 몇 번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일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장애인에 대한 대학들의 인색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지만 그 만큼 장애가 심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 씨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일반전형으로 방향을 바꿔 수시모집으로 배재대에 합격했다. 배재대는 장학금 혜택도 있고 장애인지원센터 운영도 활발했다.

김 씨는 “이제는 평가 기준에 맞추기를 강요받는 입시 미술이 아니라 나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려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를 지도하게 될 이영우 교수는 “비장애인 학생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학생인 만큼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지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지명훈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