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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한땀 한땀 배워… 이젠 일본 엄마들의 선생님

최희주(47)씨 별명은 '꼼지락 홀릭'이다. 책갈피, 필통, 컵받침, 향주머니, 앞치마, 아기 이불까지 모두 손바느질해 만든다. 메르스 공포에 얼어붙은 요즘엔 일회용 마스크와 마스크 주머니를 만들어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메르스가 아니라도 목감기 걸릴 때를 대비해서 여러 개 만들어놔요. 캐모마일, 라벤더, 레몬밤을 블렌딩한 허브차나 감잎차, 영귤차와 함께 마스크를 주머니에 담아 건네면 흐뭇한 선물이 되지요."

서울 이촌동에 사는 최씨는 한국 사는 일본 주재원 부인들의 '선생님'이다. 10년 넘게 규방공예 수업을 해오고 있다. 바느질이며 요리 솜씨가 좋은 데다 일본말이 유창해서다. 일본 남자와 결혼해 도쿄에서 8년 살았다. 어릴 때부터 실과 천 갖고 놀기를 좋아한 데다 복장학원 나온 일본 시어머니에게 바느질과 살림살이를 제대로 배웠다.

'선물'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도 일본에서다. 도쿄 작은 아파트에서 친구 하나 없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오며 가며 눈인사만 하던 엄마인데, 어느날 내게 예쁘게 포장한 물건을 내밀어요. 열어 보니 컵받침 두 개와 홍차가 들어 있었죠. 손으로 한 땀 한 땀 꿰맨 컵받침은 자기 할아버지의 낡은 유카타(파자마) 천으로 만들었대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죠." 손재주 많은 친구에게 재봉틀 사용법과 옷감 고르는 법을 배우고, 그 보답으로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단다.

'바느질 선생님'으로 데뷔한 건 2002년 한국에 돌아와서다. "두 아이가 일본인 학교에 다녔어요. 교문 밖에서 아이들 기다리는 동안 조각천들을 가지고 이런 저런 잡동사니를 만들었더니 일본 엄마들이 좀 가르쳐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요. '바느질 수다'도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한 건데, 클래스가 벌써 4개로 늘었네요(웃음)."

책 읽기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만들어본 책보와 책갈피는 주위의 '찬사'를 받았다. 컵받침은 두 장의 정사각형 옷감과 그 사이 폭신하게 넣을 솜만 있으면 준비 끝. 수퍼나 무인양품 같은 곳에서 파는 행주를 사다가 가장자리는 감침질하고 한쪽 구석에 예쁜 색깔 수실로 스티치를 해도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이 된다.

바느질뿐 아니다. 최씨는 잼과 허브솔트를 직접 만들어 주머니에 담아 선물한다. "허브솔트는 정말 쉬워요. 로즈메리처럼 집에서 키우는 허브 잎을 물에 씻어 말린 뒤 믹서에 넣고 통후추 간 것, 소금이랑 함께 갈아주면 끝이에요. 예쁜 유리병에 담아 선물하세요."

그간의 노하우를 모아 최근 '손으로 만든 선물'(푸른숲)을 펴낸 최희주씨는 "바느질해 뭔가를 조물조물 만드는 시간은 내겐 일종의 힐링타임"이라며 웃었다. "눈과 손, 바늘, 실, 천이 하나가 되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은 사라지고 단순한 손의 움직임만 남아요. 요가에서 눈을 감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자세로 명상하는 시간처럼 잡념 없는 고요한 상태가 되지요."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