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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랭길 넘어 봉평까지 메밀꽃 가을여행

가을이다. 푹푹 찌던 더위도 어느덧 멀찌감치 물러났다. 더위가 남았다 해도 청명한 가을을 시샘할 뿐. 파란 하늘은 그 속을 알 수 없을 듯 깊고 그윽하다. 성큼 다가온 가을날, 살갗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에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 새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매혹적인 메밀꽃이 펼쳐진 강원도 봉평은 어떨까. 언덕마다 펼쳐진 아름다운 메밀밭 사이로 정겨운 가을여행을 기대해본다.

맹위를 떨치던 한여름 무더위가 주춤해지는 9월 초순, 강원도 봉평 일대에는 새하얀 메밀꽃이 만발해 장관을 이룬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봉평에 가까워질수록 산기슭과 들녘마다 작고 소담스러운 메밀꽃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마치 누군가 산자락에 소금 자루라도 풀어놓은 듯 온통 새하얀 언덕이 운치를 더해준다. 꽃밭 사이로 걸으면 풀풀 일어나는 풀냄새에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청명한 가을빛은 더욱 가을 정취를 더해준다.

강원도 봉평은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주무대로 유명하다. 수만 평에 이르는 메밀꽃밭과 생애 단 한 번 사랑을 나누었던 허 생원과 성씨 처녀의 애틋한 이야기가 담긴 소설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메밀꽃 개화 시기에 맞춰 봉평에선 효석문화제가 개최돼 관광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올해 효석문화제는 9월 4일부터 13일까지 열흘간 봉평면 일대에서 펼쳐진다. 아름다운 메밀꽃 감상과 함께 문학의 감성과 축제의 화려함을 두루 즐길 수 있다.

소설 속 허 생원이 성씨 처녀와 사랑을 나눴던 물레방앗간 주변은 메밀밭이 지천으로 펼쳐진다. 작은 바람에도 춤추듯 일렁이는 메밀밭 사이를 걸어볼 수도 있다. 물레방앗간을 돌아 오솔길로 접어들면 산 중턱에 자리한 이효석문학관에 이른다. 문학전시실과 문학교실, 학예연구실로 꾸며져 있다. 메밀꽃 길이 있는 문학동산이라 할 수 있다.

청명한 가을 햇살을 즐기며 고랭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고랭길은 옛날 봉평장이 서는 날이면 면온에서 봉평으로 가기 위해 장돌뱅이가 넘던 길이다. 이 지역민들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이른바 고랭길은 해발 700m 이상 고랭지인 평창 특성을 살려 붙여진 이름이다.

고랭길은 휘닉스파크 앞에서 시작하여 작은 산을 넘고 숲길을 따라 삼림욕을 즐기며 메밀꽃 피는 봉평으로 이어진다. 고랭길은 시원스럽게 뻗은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관목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청량감을 갖게 한다. 아름드리 거목을 만날 때면 강원도 산골 오지의 자연미도 만끽할 수 있다.

고랭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 트레킹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어 지루할 틈도 없다. 흙길이어서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 고랭길은 봉평 효석문화마을에서 끝난다.

<매일경제> 전기환 객원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