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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 숨지면 유족연금 0원 … 전업주부 차별 없애야

유족연금은 수령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이걸 받던 중 사망하면 없어진다. 유족의 유족에게까지 연금이 내려가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합리적이다. 문제는 남편 사후에 유족연금을 받다가 재혼하면 사라진다는 점이다. 여성의 재혼을 막고 노후 빈곤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8년 911명, 2009년 822명, 2010년 896명, 2009년 1~9월 423명이 이런 경우에 해당했다.

경기도에 사는 김모(62·여)씨는 장애연금(국민연금의 일종)을 받던 중 2008년 남편이 숨지면서 유족연금이 생겼다. 유족연금 액수가 커 이걸 선택했더니 장애연금이 사라졌다. 그러다 2011년 남자를 만나 재혼했다. 그랬더니 남편의 유족연금 22만원을 못 받게 됐다. 국민연금공단에 항의했지만 소용 없었다. 김씨는 대신 자신의 장애연금 10만원이 회복돼 그것만 받는다.

재혼 후 유족연금 정책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완전 소멸’보다 일부 또는 전부를 지급하는 데가 많다. 프랑스·캐나다는 재혼해도 계속 지급한다. 핀란드는 50세 이후 재혼하면 계속 지급하고 그 이전에는 연금액의 36배를 일시금으로 지급하고 소멸된다. 독일은 연금 대신 연금액의 24배를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미국은 60세 이후 재혼하면 계속 지급한다. 스위스·영국·일본은 우리처럼 소멸된다.

유족연금 소멸은 이혼 때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이혼할 경우 보험료 납부기간(혼인 상태)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을 산정해 이를 반씩 나눈다. 분할연금이다. 5월 말 현재 1만2871명이 이 연금 혜택을 보고 있다. 이 중 여성 1만1365명은 재혼해도 연금을 계속 받는다. 2007년 전까지는 유족연금처럼 재혼하면 사라졌으나 법률이 바뀌면서 계속 받게 됐다. 유족연금·분할연금 둘 다 배우자에게서 파생된 연금인데도 재혼 후 운명이 엇갈린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유족연금제도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에서 “여성의 연금수급권 강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두 연금이 이혼과 사망이라는 사건에 서로 다르게 대처하는 현재의 기준에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여성에 대한 가장 강한 국민연금 독소조항은 전업주부 차별이다. 9년5개월 직장생활을 하던 전업주부(56)가 숨지면 남편이나 아이에게 유족연금이 나오지 않는다. 크게 다쳐도 장애연금이 나오지 않는다. 남편이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는 무소득 배우자(전업주부)로 분류해 국민연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 ‘1가구 1연금’이면 된다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만약 같은 조건의 여성이 결혼하지 않으면 납부예외자(국민연금 자격 유지)가 돼 유족·장애연금 혜택을 다 받는다. 이런 사각지대에 빠진 전업주부가 450만 명에 달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올 4월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처리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 =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