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26/2015102604387.html

'쎄시봉' 아닌 '윤형주' 들려드려요

가수 윤형주(68)는 1978년 가을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다가 악상 하나를 떠올렸다. 박정희 정권이 통기타 가수들의 활동을 막던 시절이다. 집에 돌아와 그 답답함을 담아 '섬 청년 마음'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비바람 몰아치던 바다가 잔잔하면/그대는 돌아오리/배가 오는 소리/님이 오는 소리"라는 가사를 붙였다. 1980년 이 노래를 발표할 수 있었지만, 이후에도 관객 앞에서 부를 기회가 없었다. 가수에겐 엄혹한 시절이었다.

윤형주는 서울 연세대 백양콘서트홀에서 여는 단독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처음 부른다.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윤형주는 "43년 만에 윤형주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공연이라 그동안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다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1972년 학업 때문에 가수 은퇴 선언을 하면서 마지막 개인 공연을 했어요. '쎄시봉' 열풍이 불어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과 같이 공연하면서 개인 공연에 대한 갈증도 자연스럽게 다시 생긴 거죠."

그는 1960~70년대엔 서울 명동의 음악다방 '쎄시봉'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송창식과 트윈폴리오를 결성해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1975년 광고음악 회사를 차렸다.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같은 광고음악이 그의 손끝에서 나온 것이다. "그때 '쎄시봉' 친구들은 활동 규제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릴 때인데 제가 돈을 좀 벌고 있어서 도와줄 수 있었죠. 그때 항상 했던 말이 '언젠가 우리 시대가 다시 올 거니까 음악 관두지 말자'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시대가 조금 늦게 왔다. 2010년 '쎄시봉' 열풍이 불면서 그는 예전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다시 공연하기 시작했다. "'쎄시봉' 공연만으론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이 있어요. 제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는데 그걸 부를 수 없거든요."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모교 연세대를 위한 모금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연세대 측에서 감사 표시로 교내 공연장을 무료로 대관해 주겠다고 한 것.

공연 제목도 '윤동주 서거 70주년 기념 윤형주 리싸이틀'로 지었다. 직접 작곡한 '윤동주님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윤동주의 시를 낭송하는 순서를 마련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콘서트 대신 그 시절에 쓰던 '리싸이틀'이란 말을 쓴 것도 그때 제 노래를 들려주겠단 의지가 들어있는 거죠."

보통 통기타 한 대 들고 노래하는 걸 가장 잘하지만, 이번엔 15인조 오케스트라와 무대에 선다. 800석 규모의 크지 않은 공연장을 풍성한 소리로 채우겠단 포부다. "돈 벌려고 여는 공연이 아니라 음악가로서 윤형주의 오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여는 거니까요." 오랫동안 그를 사랑해준 팬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도 마련했다. 그걸 위해 하루 몇 시간씩 연습 중이다.

<조선일보> 권승준 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