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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한 곳마다 해태像 세웁시다
1990년대 초, 한 식품회사의 캔커피 광고. 청춘스타 심은하 옆에 미남 모델이 섰다. 중앙대 미술대 조소과에 다니던 그는 조각 같은 외모와 훤칠한 키로 많은 광고주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본·이종원·장동건·정우성·차인표 등 연예인과 시계·남성복·자동차·백화점 광고 수십 편을 찍었다. 최근까지 모델 활동을 해온 최진호(46)씨다. 그의 본업(本業)은 조각가로, 중앙대에서 조소를 가르치는 강사이다.
그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정문 앞에 놓인 해태상 곁에 섰다. 호텔 100주년을 기념해 그가 만들어 기증한 것이다. 해태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온 주제이다. 이달 말에는 파주 작업실에서 해태상 40여점을 전시한다. "상상 속 동물이지만 법과 정의의 상징이자 화재와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지요. 조선시대에 왕이 머무는 곳에는 반드시 해태상을 놓았어요. 대검과 국회의사당에 해태를 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200개 넘는 해태상을 만들었다. "대학 3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갔는데 그곳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니까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더라고요. 그 뒤 지방 사찰들을 다니며 탑과 석상을 유심히 보았죠." 결정적 계기는 2009년 서울시 상징인 해태 조각을 맡으면서였다. 서울시청 앞에 그가 만든 해태상이 있다. 당시 그는 경복궁 앞을 비롯해 우리나라 전역의 해태상을 조사했다. 알고보니 광화문과 궁궐 일대에는 중국 사자상이 많았다. 사자상은 보통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있거나, 수사자가 공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네발로 우뚝 선 기품 있는 해태와는 다르다. 조선호텔 앞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해태상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에도 있다. 지난해 외교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증할 예술품을 공모했는데 11월 그의 해태상이 당선됐다. "헤이그로 답사 갔더니 국제사법재판소와 상설중재재판소가 마주 보고 있더군요. 그쪽에선 상설중재재판소 쪽에 세우라고 했지만 저는 사법재판소 쪽을 고집했죠." 그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빼앗아 가려 하지 않느냐"며 "사법재판소는 정의가 바로 서야 하는 곳이니 그곳에 정의의 상징 해태상을 세우고 싶었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해외의 여러 독립운동지에도 해태상을 세우고 싶어요. 해태는 우리의 문화이자 우리 민족을 지켜온 정의로움의 상징이니까요."
해태는 중국 문헌에 나오는 '요순시대 상상 속 동물' 해치(獬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는 2008년 시 상징을 정하며 "표준국어사전을 보면 해치가 해태의 원말"이라며 해치라고 불렀다. 하지만 현재 문화재청과 한국학연구원 등은 '해태'라는 표현을 앞세우고 있다.
<조선일보> 심현정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