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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값? 감사의 글만 남기세요” … 배다리 마을 특별한 나눔

인천시 동구 창영동 배다리 마을의 한 골목.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건물들 사이로 ‘나눔가게 돌고(庫)’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6.6㎡(2평) 남짓한 매장 안쪽에 놓인 선반엔 앙증맞은 아기 신발 5켤레와 티셔츠 등 옷·책·그릇·필통·수첩·스케치북 등 다양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가게’라고 써있긴 하지만 돈으로 물건을 사고 팔진 않는 곳이다. 입구에 놓인 안내판 글귀처럼 ‘필요한 물건은 가져가고, 안 쓰는 물건은 가져오면’ 된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도 장롱 속에 잠자고 있던 옷이나 먼지가 뒤덮인 책, 손때 묻은 장난감 등 중고물품이 대부분이다. 어떨 땐 관광객들이 두고 간 귤 세 개와 캔커피 한 개, 과자 한 봉지 등 주전부리도 판매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매매 방법은 글쪽지를 남기는 것. 기증한 사람이 물건에 담긴 사연 등을 적어 선반에 배치하면 가져가는 사람이 감사의 글을 남기는 식이다. “아기 옷 몇 벌 두고 갑니다. 좋은 옷은 아니지만 필요하신 분께 전해지길.” “우리 손녀가 태어난 지 5개월이 됐습니다. 예쁜 옷 잘 입히겠습니다.” “신발을 놓고 책 빌려갑니다. 소중하게 잘 보고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이 가게는 몇 달 전만 해도 비어 있었다. 규모가 작은 데다 구도심, 그것도 골목 안쪽에 있어서 오랫동안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역공동체 문화공간인 ‘스페이스 빔’이 “방치된 빈 상가가 동네를 더 을씨년스럽게 만드니 주민을 위한 나눔의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보자”는 의견을 냈다.

아이디어는 지역활동가 권은숙(49·여)씨의 사례에서 찾았다. 인근에서 헌책방과 배다리 마을 안내소를 운영하는 권씨는 종종 가게 앞에 쓰지 않는 물품을 작은 상자를 담아 내놓으며 “필요한 분들은 가져가세요”라고 알렸고, 이게 큰 호응을 얻자 “아예 이런 가게를 차려 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됐다.

스페이스 빔 관계자는 “내게 필요없는 물건이 이웃들에겐 긴요하게 쓰일 때가 적잖다”며 “단순히 물건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나눔의 의미를 공유하자는 뜻에서 글쪽지를 남기도록 했다”고 말했다. 취지를 설명하자 상가 소유주인 인천양조장도 “무료로 사용하라”며 흔쾌히 공간을 내줬다.

이에 스페이스 빔은 지난 6월부터 배다리 도시학교 참가자들과 함께 상가 리모델링에 나섰다.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가게 용품도 모두 재활용품을 활용했다. 그러다 보니 단돈 30만원에 가게를 열 수 있었다.

이렇게 지난 9월 나눔가게 ‘돌고(庫)’가 문을 열었다. ‘서로의 물건들이 돌고 돈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24시간 연중무휴로 문을 열지만 가게를 지키는 사람은 따로 없다. 주민과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중앙일보> 글=최모란기자, 사진= 박종근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