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joins.com/article/19416069

“더 어려운 친구 도와줄래요” 땅끝마을 아이 40명의 선행

땅끝마을로 알려진 전남 해남군 송지면의 해남땅끝지역아동센터. 이곳을 다니는 어린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친 뒤 5㎞ 가량 떨어진 아동센터까지 걸어간다. 걸어서 꼬박 1시간30분 이상 걸리는 거리다. 아동센터에 도착한 아이들은 정수기 위에 놓인 저금통에 1000원씩 넣는다.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다니며 아낀 버스비다.

아이들은 이렇게 모은 저금통을 들고 1년에 한 번씩 단체로 외출을 한다. 십시일반 모은 돈을 전남 무안군에 있는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기 위해서다. 40여 명의 아이들은 오는 20일에도 기부하러 모금회를 찾아간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땅끝아동센터 아이들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시작한 건 2008년이다. 첫 해 17만원을 시작으로 해마다 수십만원씩을 기부하고 있다. 올해로 꼬박 9년째다. 지난해까지 누적 기부액은 300만원이 넘는다.

땅끝에 사는 아이들의 선행 사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땅끝아동센터는 건물주가 건물을 매각키로 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었다. 이 소식을 들은 배우 문근영씨는 3억원을 들여 센터 건물을 새로 지어줬다. “아이들의 소중한 공부방이자 생활 터전이 사라진다”는 말에 흔쾌히 돈을 내놓았다. 문씨의 기부로 뿔뿔이 흩어질 위기를 넘긴 아이들은 “우리도 남을 도와주자”고 뜻을 모았다.

아동센터 내 저금통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센터를 거쳐 성장한 대학생들도 함께 채우고 있다. 전남 목포·영암·순천 등지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말이면 간식거리를 들고 찾아와 저금통에 돈을 넣는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쪼개 어린 시절부터 해온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언니·오빠들을 보고 자라온 아동센터 동생들도 자연스럽게 기부를 한다. 아낀 버스비 외에도 학교에서 부상으로 받은 문화상품권 등을 넣어 저금통을 채운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서로 더 많은 돈을 기부하기 위한 열기가 뜨겁다.

땅끝아동센터는 구성원인 아이들이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공동체 의식도 강하다. 부모들 대부분이 김공장 등을 다니는 비슷한 가정 환경을 지닌 아이들이 모여 친형제처럼 지낸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공동체 모습을 배우기 위해 새터민 20여 명이 찾아오기도 했다. 낯선 한국에서 아동센터 아이들처럼 똘똘 뭉쳐 생활한다면 서로에게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땅끝아동센터는 부모가 직장 생활로 바빠 돌봐줄 수 없는 아이들이나 기초생활수급자·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모여 지내는 곳이다. 땅끝아동센터 김혜원(50·여) 시설장은 “기부가 아동센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아이들이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양보심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