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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있는 은퇴자, 부동산 줄이는 게 먼저

부산에 사는 김모(62)씨는 3년 전 1억8000만원을 대출받아 아파트를 한 채 분양받았다. 이후 불황으로 운영하던 인테리어 가게를 접으면서 대출이자는커녕 부부의 생활비마저 대기 어려워졌다. 그는 아파트를 팔려고 내놨지만 미분양 아파트가 포화 상태인 지역이라 매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카드론과 캐피털·저축은행 대출로 생활비와 대출이자를 충당해 오다 4000만원을 연체하게 된 김씨는 지난해 12월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줄어든 고정 소득, 부동산에 묶인 자산. 많은 은퇴자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만드는 위험 요소다. 여기에 갚아야 할 빚까지 있다면 그 어려움은 배가된다. 김씨와 같이 빚이 있는 은퇴자들의 경제 상황을 들여다보기 위해 통계청 ‘2015 가계금융복지조사’의 마이크로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했다.

평균 연령 69.8세인 이들 은퇴자는 평균 4억7495만원의 자산과 7861만원의 부채를 보유했다. 자산 대비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16.6%)이 그렇게 높진 않다. 그런데 이들이 가진 자산의 대부분(85.1%)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게 함정이다. 집을 팔면 부채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집이 잘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매매에 따르는 각종 비용 부담도 만만찮다

그래서 이들은 예전보다 줄어든 소득 중 3분의 1가량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연간 평균 가처분소득이 2382만원인데 이자와 원금 상환을 위해 들어가는 돈이 756만원(31.7%)이다. 자연히 살림살이가 팍팍할 수밖에 없다. 소득이 적정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부족하다는 응답 비율(49.8%, ‘매우 부족’ 포함)은 여유 있다는 응답(12.9%, ‘충분히 여유’ 포함)의 네 배 수준이었다. 소득원 중 안정적인 연금(1012만원)의 비중은 절반이 안 된다.

부채를 보유한 은퇴자들은 애초에 왜 빚을 지게 됐을까. 금융권 담보대출 보유자는 ‘내가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31.2%)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생활비 조달(18.8%)과 거주주택 이외의 부동산 마련(11.3%) 순이었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과거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땐 만기 일시상환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뒤 집을 팔 때 한꺼번에 빚을 갚는 게 일반적이었다. 고령층이 여전히 많은 부채를 보유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50대에 자녀 대학 등록비와 결혼자금 같은 지출이 많다 보니 미처 부채를 줄이지 못한 채 은퇴를 맞이하게 됐다.

노후엔 자산보다는 현금 흐름이 중요하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의 개인워크아웃 신청은 6029건으로 전년보다 25.3% 늘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빚이 많은 은퇴자라면 부동산을 노후 생활비의 기반으로 여기고 역모기지론을 통해 집을 현금인출기 처럼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중앙일보> 한애란 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