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26/2016032600084.html
칠십 한평생… 빚만 남았네
안모(여·70)씨는 1998년 남편과 사별한 뒤 건물 청소를 하면서 장애인인 큰아들과 둘이서 살았다. 그런데 결혼한 딸이 사위의 실직으로 신용카드 빚에 몰리게 됐다. 이를 보다 못한 안씨는 딸이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때 빚보증을 섰다. 그러나 딸은 빚을 갚을 길이 없었고, 안씨 역시 다리 골절과 당뇨 등으로 더 이상 청소일을 못하게 되면서 자신과 아들의 생활비 조달마저 막막해졌다. 안씨는 결국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파산신청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서 올해 1월과 2월 두 달간 파산선고를 받은 1727명의 연령을 분석한 결과, 이들처럼 60대 이상 노인 파산자들이 428명, 24.8%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50대(37.17%)보다는 적지만 40대(28.2%)와 비슷하고 30대(8.86%)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60대 이상 파산자들을 세분해 보면 60대가 352명(20.38%)으로 가장 많았지만, 70대(67명·3.88%)와 80대(9명·0.52%)도 적지 않았다. 법원이 파산자의 연령별 통계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통상 30대 파산층이 가장 두터웠던 10년 전에 비하면 노인 파산이 급속히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9.6%로 OECD국가 중 1위다. 노인 파산이 늘어나는 이유는 생활비와 병원비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파산자의 70%가량이 노후 자금이 없는 취약계층"이라며 "수입이 있더라도 월 100만원 미만인 경우가 많고 카드빚을 지거나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금세 회복 불가능한 빚더미에 앉게 된다"고 했다.
과거의 사업 실패 영향이 이어지다가 노령(老齡)으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한계에 다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중장비 도매업을 하던 한모(76)씨는 한때 호황을 누렸지만 2002년 부도를 맞았다. 한씨는 대출을 받아 몇 차례 재기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해 빚만 안게 됐다. 기초생활수급비 64만원과 노령연금 20만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당뇨와 치매 증세가 겹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불가능해지자 결국 법원 문을 두드렸다.
이런 노년 파산의 경우 자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꾸로 자녀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정모(여·78)씨는 강원도에서 다방을 운영하는 딸이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것을 보다 못해 빚보증을 섰다가 3000만원 넘는 빚에 시달리다가 파산신청을 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에게 의존하다가 결국 양쪽 모두 생계의 곤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양은경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