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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아쟁·가야금 능한 三才… “내 꿈은 영원한 현역”

전북 전주 한옥마을 초입에는 ‘온고을 소리청’이라는 예스러운 명패가 붙은 한옥이 있다. 김일구(81)·김영자(70) 부부 명창은 지난 2001년부터 여기서 후학들에게 판소리와 아쟁, 가야금을 가르치고 사랑방 공연을 열고 있다. 지난해 이 부부는 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와 ‘심청가’ 보유자로 나란히 인정받았다. 국악계의 ‘첫 부부 무형문화재’다. 아내 김영자 명창은 “판소리 무형문화재는 제가 석 달 선배”라며 환하게 웃었다. 두 아들과 며느리도 판소리와 아쟁을 전공한 ‘국악 가족’이다.

올해 방일영국악상 수상자인 김일구 명창은 판소리 ‘적벽가’는 물론, 아쟁 산조와 가야금 산조까지 두루 능한 국악계의 르네상스인이다. 예인(藝人)에게는 노래와 연주, 명창과 명인의 경계가 없다. 김 명창은 “가무악(歌舞樂)은 본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 하나로 통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말”이라고 했다. 1979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아쟁으로 기악부 장원에 오른 뒤 1983년 같은 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도 대통령상을 받았다. 국악계의 별명도 ‘삼재(三才)’. 판소리·아쟁·가야금에 두루 능하다는 의미다.

판소리 애호가이자 창극단장이었던 아버지에게 토막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아홉 살 무렵이다. 김 명창은 “어제 배운 소리를 오늘 못 외워 부르면 아버지는 한겨울에도 옷을 벗겨서 개울가로 내쫓았다. 1~2분씩 찬물에 들어가 있으면 몸이 얼어서 못 나올 정도로 얼얼했다”고 기억했다. 뱃심을 기르기 위해서 산에 올라가면 새끼로 나무에 몸을 묶고 노래 연습을 했다. 그는 “나중에는 몸을 묶었던 소나무 껍질이 다 벗겨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소리책도 녹음기도 없던 시절에는 오로지 암기(暗記)가 최고 공부였다. 그에 비하면 요즘 후배들은 선생님과 소리책, 녹음기까지 ‘스승 세 분’을 모시고 공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열다섯 살 때부터 왕자 같은 아역으로 창극단 가설 무대에 섰다. 하지만 그 무렵 찾아온 변성기 때문에 목소리가 속 시원하게 터지지 않는 슬럼프를 겪었다. 그때부터 악기를 배우기 위한 방랑이 시작됐다. 목포의 장월중선 명창에게는 아쟁 산조를 배웠고, 부산의 가야금 명인 원옥화 선생에게는 가야금 산조를 사사했다. 그는 “스승 찾아 삼만 리를 하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10분 안팎의 아쟁 산조는 김 명창 손을 거쳐서 30여 분의 대곡으로 확장됐다. 예순 넘어서는 서른 즈음에 배웠던 거문고를 자식뻘 후배에게 다시 배웠다. 그는 “배움에는 위아래가 없다. 내가 모자라면 아기에게도 배우는 것이 공부”라고 말했다.

나이 마흔에 박봉술 명창을 찾아가서 판소리 ‘적벽가’를 다시 배웠다. 그는 “고물상에서 자전거를 사서 매일 왕복 2시간 반 걸리는 스승의 집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면 한겨울 빵모자에 고드름이 맺혔다”고 말했다. 그렇게 배운 ‘적벽가’로 무형문화재가 됐으니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에 틀림이 없다.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