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chosun.com/national/people/2021/12/21/O2AAHBXDYBGJRDJB532MZMVM74/
“90년대 구례5일장엔 주민들 인생이 담겨있죠”
“순간을 붙잡지 않으면 영영 놓치고 말죠. 구례의 3·8장을 사진으로 남겨두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지리산 아래 섬진강이 흐르는 전남 구례에서 3, 8이 들어간 날은 ‘5일 시장(市場)’이 열리는 날이다. 토박이 공무원 김인호(59·구례군 홍보팀장)씨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1990년대의 구례 장터 풍경을 담은 사진집(‘꿈속 같던 시절, 그날의 풍경’)을 내놓았다. 문헌상
구례의 3·8장은 300년 넘어 이어져왔다. 1990년부터 필름 카메라를 둘러메며 군청 보도사진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30년 넘게 구례의 산하(山河)는
물론, 갖가지 풍경과 인물 등을 앵글에 담아왔다.
“3·8일이 되면 발길이 자연스레 시장으로 향했지요. 셔터를 누를
때 쑥스러운 듯 환하게 웃어주시던 그 시절 어르신들과 시장의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제 눈과 가슴에도
차곡차곡 기록돼 있지요.”
사진을 보노라면 시장터 구례 사람들의 떠들썩한 얘기들, 소식을 주고받는 정겨운 대화들이 들려올 것 같다. 사진자료에서 지난 5개월 흑백·컬러 사진 모두 96장을
골랐다. 곡식과 과실, 채소를 팔러 나오고, 농사 필수품인 낫과 톱을 고쳐 쓰려던 모습들이 그 속에 있었다. 거래를
기다리며 시장 곳곳을 지키던 모습들도 포착됐다.
사진마다 구례 사람의 인생사가 구술로 입혀져 당시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아부지들은 막걸리 한잔썩 잡수기도 했는디, (어머니들은) 밥 사묵은 사람도 벨로 없어. 친정 친구들을 만나도 선 자리서 헤어지고…” “쪼깨 늦게 가면 자리가 없어 싸우고 야단이여. 막 여러 동네
사람들이 온께.” 시장에서 푼돈이라도 바꿔 자식들을 키우던 시절이었다.
그는 1930~80년대의
사진을 수록한 ‘구례 향토사진집’을 비롯, ‘하늘에서 바라본 구례’ ‘구례를 걷다’ 발간을 주도했다. 구례의 풍광을 담은 ‘아! 노고단의 사계’ ‘산수유마을
사진전’ 등 전시회도 열었다. 그는 “고향을 기록해온 세월이 늘 행복했다”며 “앞으로도 아름다운 구례의 모습을 사진으로 충실하게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권경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