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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30년… 예뻐야 무용 한다는 건 고정관념”

“1991년 9월에 처음 밀었으니 벌써 30년이네요. ‘무용은 예뻐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싶었어요. 작품만 잘 만들면 누군가 날 불러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열흘에 한 번 클리퍼(일명 ‘바리캉’)로 직접 깎아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 안은미(59)는 빡빡 깎은 머리와 튀는 옷차림으로 기억된다. 20년 전부터 유럽에서 ‘아시아의 요정’ 소리를 들은 무용수 겸 안무가. 2018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장 ‘테아트르 드 라 빌’의 상주 예술가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됐다. 올해는 ‘삭발 30주년’. 안은미는 “마성이 있는지 이젠 답답해서 못 기를 정도로 삭발이 편하다”고 했다.

안은미는 지난 19일 공연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에도 출연해 수도승처럼 느린 춤을 보여줬다. 장식을 배제한 빈 무대였다. 고탄력 원피스를 입은 무용수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공간을 채우고 비우고 또 채웠다. 반복과 변주가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했다. 후반부에 이르자 모두 옷을 벗더니 둘둘 감기 시작했다. 반라(半裸)의 무용수들은 맙소사, 그것을 채찍처럼 썼다. 관객은 땀 범벅 원피스가 댄스 플로어를 후려치는 소리를 들었다. 쿵! 쿵! 쿵!

안은미컴퍼니가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24일 ‘거시기 모놀로그’, 25일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등 대표작들을 릴레이 공연한다. 코로나 사태에도 지난 9~10월 유럽 투어를 다녀왔고, 내년 3월에도 독일·프랑스·노르웨이 등 유럽 6국 공연이 잡혀 있다.

안은미는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은 남녀가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젠더와 고정관념을 헝큰 2005년 초연작”이라며 “여성적인 남성도 있고 나처럼 웬만한 남성보다 힘이 센 여성도 있다는 생각으로 ‘네 이름을 바꿔줄게’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했다. ‘거시기 모놀로그’는 60~90대 여성들의 첫날밤 경험담을 채집해 춤으로 풀었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지. 수건 깔라고 해서 깔았지 뭐~’ 같은 이야기가 음악처럼 흘러나온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실제 어머니들을 무대에 세우고 함께 춤을 추면서 인생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안은미는 “안은미컴퍼니를 만든 1988년부터 작품(약 150편)을 짜면서 줄창 달려왔다”며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내 나이가 곧 환갑이더라”고 했다. “몸으로 상상하는 예술이라는 게 춤의 매력이에요. 딱딱해진 뇌를 말랑말랑하게 자극합니다. 근년 들어 비전문가들과 작업할 일이 많았는데 전문 무용수들에게도 경험치가 쌓여요.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공연하면 객석에 있던 어머니들도 우르르 올라와 춤판이 벌어집니다. 우리 무용 언어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기회가 됐어요.”

안은미는 작품에 언제나 ‘블랙유머’를 담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웃음, 통쾌하게 생각의 전환을 이끄는 웃음이다. 안은미는 “시대가 바뀌는 발자국을 춤으로 계속 기록할 것”이라며 “우리 현대무용이 더 많은 국내외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좋은 선배, 진짜 선배가 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