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donga.com/3/all/20171213/87704211/1
[12월 2주] “나박김치 국물 한사발, 겨울 나는 스님들의 에너지 드링크”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공양게·供養偈)
대한불교조계종 선정 사찰음식 명장 1호. 거창한 이름만큼 선재 스님은 요즘 절밥 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이지만, 막상 마주하면 수줍은 웃음이 온기를 뿌렸다. “길도 얼었는데 뭐 여까지 오냐”며 타박을 놓다가도 뭐 하나 더 내놓느라 자리에 앉을 새가 없다. 인터뷰하게 제발 오시라고 만류하길 몇 차례. 어라, 스님의 손엔 ‘김치 국물’ 한 사발이 들려 있었다.
“이리 추운데 웬 나박김치인가 싶죠? 그런데 겨울철 절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 김치요. 고기와 오신채(五辛菜·마늘 파 달래 부추 무릇)를 금하니 어디서 에너지 얻기가 마땅찮지. 그런데 김치는 발효식품이라 영양이 가득하거든. 엄동설한이 와도 아침에 장독대 가서 꼭 이거 한 사발을 들이켜요. 그럼 하루 종일 속이 편해.”
실제 절간 김치는 잣이나 호두, 좁쌀 등으로 담백하게 맛을 낸다. ‘슈퍼 푸드’ 견과류는 김치와 궁합이 의외로 잘 맞는다. 치자가루도 근사하다. 혈액순환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치자를 선조들은 고춧가루 대신 썼다. 홍갓도 추천 재료. 나박김치나 동치미에 넣으면 보랏빛 국물이 보기에도 아리땁다.
김치만큼 겨울 사찰음식에 또 중요한 게 있다. 뿌리채소와 해초류다. 예전엔 봄여름에 거둬 말려뒀던 걸 썼지만, 요즘은 식재료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날 스님이 선보인 요리는 ‘파래 연근전’과 ‘버섯 된장 쌈밥’ ‘능이 부침’. 오래 묵힌 된장 간장을 써서 감칠맛을 돋우니 젓가락을 놓을 새가 없다.
긴긴 겨울밤, 후식도 빼놓을 수 없다. 청와대 국빈만찬에 선보였던 ‘송차(松茶)’와 ‘다식’이 대표적인 요리다. 3년 이상 솔잎을 숙성시킨 송차는 막힌 혈을 풀어주고, 측백나무 열매인 백자인(柏子仁)으로 만든 다식은 면역력 회복에 그만이다. 스님은 “채식주의자인 스리랑카 대통령 일행을 위해 기름진 메인요리의 콜레스테롤을 중화시켜 줄 음식으로 골랐다”며 “양국 정상이 크게 만족했다며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열반경(涅槃經)을 보면 중생들이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부처님은 엉뚱하게 ‘뭘 먹고 사느냐’고만 물어보시죠. 왜인 줄 아세요? 좋은 음식을 먹어야 심신도 맑아지니까요. 딴 거 없습니다. 건강한 땅에서 키운 제철음식을 먹으면 됩니다. 하나 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옛 어른은 콩 심을 때 한 구멍에 세 알을 넣었어요. ‘하나는 벌레, 하나는 새, 하나는 사람’을 위해. 음식엔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깊은 성찰이 담겨 있죠. 겨울 사찰음식은 그런 조화를 첫째 덕목으로 칩니다.”
<동아일보> 정양환 기자
<*지면 구성상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