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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 수상 바로 다음날 무대… “어제의 영광은 잊었다”

11일 밤 7시 20분 대학로 TOM 1관. 연극 ‘라스트세션’(Freud’s Last Session) 공연을 앞둔 330여 석 소극장에는 관객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로비도 북적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골든글로브 남우 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78)의 포스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다.

어떤 배우가 세계적인 상을 받고 그 흥분이 가시지 않은 이튿날 관객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라스트 세션’은 10~11일 연극 판매 1위(인터파크)를 기록했다. 제작사 파크컴퍼니는 “골든글로브 발표 후 24시간 동안 약 5000석이 팔렸고 오영수가 출연하는 회차는 거의 매진됐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인스타그램에는 오영수가 핑크빛 왕관을 쓴 채 케이크를 들고 웃는 사진이 올라왔다.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이라는 문구가 영어로 적혀 있었다. ‘라스트 세션’을 함께 공연 중인 배우 이상윤이 띄운 조촐한 축하 파티 인증샷. ‘깐부’인 배우 신구(86)는 “축하 전화를 했더니 ‘형님, 그런 말씀 마세요’라며 겸연쩍어했다”고 전했다.

오영수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얼떨떨했는데 공연장에 오니 (수상이) 실감 난다. 무엇보다 평소 연극을 잘 안 보던 분들이 대학로를 찾아오시니 기쁘다”고 말했다. “골든글로브 기운으로 오늘 밤 최고의 공연을 기대한다”고 하자 배우는 “어제와 달리 마음이 무겁지는 않지만 공연에 집중할 수 있게 놓아달라”고 했다. 어제의 영광은 잊고 연극 배우로 스위치를 바꾼 셈이다.

‘라스트 세션’은 1939년 9월 3일 런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신구·오영수)의 집으로 작가이자 옥스퍼드대 교수 C S 루이스(이상윤·전박찬)가 방문하면서 시작되는 2인극이다. 연출가 오경택은 “‘신구 프로이트’는 완고하고 연륜이 느껴지는 달변가라면 ‘오영수 프로이트’는 굉장히 날카롭고 학자로서의 여유를 잘 살린다”고 했다.

만석(滿席)이었다. 이윽고 밤 8시, 객석 등이 꺼졌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영국 체임벌린 수상이 대국민 담화(독일과 전면전 선포)를 발표한다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과학을 믿는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계시를 믿는 유신론자 루이스는 만나자마자 말과 논리로 상대의 빈틈을 찔렀다. 관객은 고요하게 몰입했고 ‘올림픽 펜싱 경기’ 같은 100분이 지났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땐 오영수를 향해 1분간 전원 기립 박수를 보냈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