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3/2018091301879.html

정성 가득… 종가 음식 진짜는 소박하고 정갈하게

명문 종가(宗家) 음식은 가세(家勢)를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고 호사스러울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실제 종가의 차례상을 보면 그렇지 않다. 그동안 만난 종부(宗婦)들은 "종가 음식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이 담긴 음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종가 음식은 값비싼 고급 재료를 사용한 경우가 드물었다. 대신 시간과 정성을 들여 품격을 높인다. 경북 예천 춘우재 권진 종가가 대표 명절 음식으로 꼽는 '집장(集醬)'이 그랬다. 집장은 '여러 재료를 모아서(集) 만든 귀한 장(醬)'이란 뜻이다. 찹쌀을 쪄서 삭힌 다음 메줏가루에 버무린다. 이걸 가마솥에 다시마, 찐 오징어, 호박오가리, 가지, 대파, 버섯, 고춧잎, 무, 마늘 등 9가지 재료와 함께 넣고 오랫동안 타지 않게 정성 들여 불을 때 끓인다. 그걸 하루에서 하루 반 정도 숙성시킨 다음 먹는다. 시간과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음식이다. 집장을 조금 찍어 맛봤다. 겉보기엔 거무튀튀한 게 그리 맛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구수하면서 깊은 감칠맛이 혀를 감쳤다. 춘우재 조동임(69) 종부는 "이걸 드신 손님들이 병(病)도 고칠 것 같다고들 하신다"며 미소 짓는 입가에 자부심이 번졌다.

전남 나주 밀양 박씨 청재공파 박종 종가의 모싯잎송편은 잘게 찢은 모싯잎을 쌀가루와 섞어 만든다. 모싯잎은 요즘 골다공증에 특효라 하여 중년 여성들에게 인기지만, 송기와 마찬가지로 흉년에 먹던 구황식품이었다. 요즘 유명한 전남 영광의 모싯잎송편은 큼직하게 빚는다. 지주가 "일 잘해달라"며 머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크게 빚은 송편이다. 이를 '노비송편'이라 불렀다. 박종 종가의 모싯잎송편은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다. 강정숙(67) 종부는 "양반들은 '상스럽다'고 해서 손이 많이 가더라도 송편을 작게 만들었다"고 했다. "크게 빚었다간 할아버지한테 혼나부렀제."

화려한 차례상은 전통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고 한다. 성균관 박광영 의례부장은 "과시욕으로 차리는 요즘 차례상은 전통과 무관하게 잘못된 문화"라고 했다. "차례(茶禮)라는 단어 자체가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주자가례' 등 예서(禮書)엔 추석이나 명절에 '구할 수 있는 간단한 채소나 과일을 준비해 올린다'고 적혀 있죠. 돌아가신 분께 술로 교접하는 거니 술은 갖추고 안주로 삼는다 생각하고 적, 떡, 과일 등을 한 가지씩 갖추면 알맞을 듯합니다. 별식으로 추석에는 송편, 설에는 떡국 등 그 시기의 대표 음식을 올리는 것도 좋겠죠."

박 부장의 "고인께서 즐기셨던 음식이라면 어떤 것을 올려도 괜찮다"는 말은 좀 놀라웠다. "피자나 치킨, 햄버거 같은 음식도 가능하냐"고 묻자, "전통음식이 아니라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어떤 마음으로 올리느냐, 즉 정성이 중요하겠죠." "종가 음식은 소박하고 정갈합니다. 화려하고 빛나면 그건 가짜"라던 어떤 종부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조선일보 : 김성윤 기자